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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제74주년 광복절] 두마면 출신 독립운동가 배영직
기사입력 2019-08-13 오후 3:19:00 | 최종수정 2019-08-19 오후 6:29:49        

[광복절 특집] 계룡시는 지역 규모에 비해 독립유공자와 인연이 많은 지역이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두마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영직(裵營直)'을 소개하고자 한다.

1999년 12월 계룡출장소에서 발행한 「계룡의 어제와 오늘」은 옛 계룡시의 향토사부터 계룡신도시 건설까지를 어울러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을 두고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고장 독립유공자'라는 부록으로 총 8명의 독립유공자를 소개하고 있다. 아래 두마면 출신 '배영직'에 관한 부분을 발췌했다.

「계룡의 어제와 오늘」에서 소개한 독립유공자 8명은 앞서 소개한 책 '계룡소고'에 실린 독립유공자 자료와 대동소이하다.  '독립운동사 자료집 5권(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을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배영직

배영직(裵營直)은 논산군 두마면 입암리 341번지 출신으로 두마 장날 일제에 항거 대한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동한 항일투사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라온 배영직은 기골이 장대하고 의협심이 강하였으며 정의로운 일에는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이라서 주위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제는 우리나라의 내정까지도 간섭해 오다가 1910년에는 강제로 한일합방 조역을 체결하여 우리나라의 주권마저 강탈하니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여러 방법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압박은 날로 심해져 가고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이 뒤얽혀 배영직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비밀리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힘을 뭉쳐서 일제에 항거하여 우리의 주권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 있었다.

그 때 거국적인 3・1운동이 태동하게 되니 배일감정이 절정에 달한 우리 민족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배영직은 이 시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주위에 있는 청년들을 모아놓고 인원 동원이 용이한 두마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비밀리에 계획을 세우고 거사일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마장날 배영직은 군중들 앞에 나서서 국권회복의 중요성을 역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운동을 전개하니 수 백명의 장꾼들이 합세하여 두마장 일대는 만세소리로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동안 배영직은 부친인 배대식(裵大植)과 함께 1910년부터 1923년까지 국권회복책의 일환으로 농촌 자력갱생운동을 계속하여 왔고, 부근에 있는 빈민들을 찾아 다니며 수십석의 양곡과 수백원의 금품을 매년 정기적으로 나누어 주면서 항일 독립운동을 고취하여 지역 주민들의 추앙을 받아 왔다. 그래서 배영직이 앞장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합세하였다.

그러나 배영직은 1924년 두마장날 또 다시 만세 시위를 하다가 왜경에게 체포되었다. 워낙이 기골이 장대한지라 왜경들은 마음대로 다루지를 못하고 철사줄로 망을 치다시피 하여 묶어서 끌고 갔다. 군산 형무소에 이송되어 2년간 복역을 하여야 했다. 왜경의 혹독한 고문은 매일 계속되어 견디기 어려웠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자 배영직이 살던 집마저 불살라 버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왜경이 치료하려 하자 그것마저 거절하고 끝내 치료를 받지 않고 저항하니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쇄약해졌다.

1926년 10월 사경에 이르러 출옥하여 들것으로 집으로 떼며와 보니 상처에서는 괴자리들이 들끓고 있어 참으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배영직은 옥고로 출옥한지 3일 만에 순사하였다.


이가은
계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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