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계다리에서 바라본 두계리 일대


대전-논산 국도에서 계룡으로 들어오는 여러 길 가운데 두계삼거리를 통하는 길이 가장 역사가 깊다. 두계삼거리는 왕대리, 입암리 방향과 두계리, 금암리(동) 방향으로 갈라진다. 두계삼거리는 1950, 60년대 신도안을 그린 대하소설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사연이 많은 삼거리로 추측된다.

두계삼거리에서 계룡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포스코 아파트에 다다라 좌측에 두마면사무소가 나온다.

면사무소 아래는 옛 장터로 철길을 사이에 두고 위 장터, 아랫 장터로 구분된다. 지금은 장이 서지 않는 폐장 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신도안, 연산, 진잠, 벌곡과 마찬가지로 큰 재래시장이 형성됐던 곳이라고 전한다.

두계장터는 일본강점기 만세운동(4월 1일)이 있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은 인파가 몰리는 장터 한 복판이었다.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일제에 상권침탈을 당하는 입장에서 외세를 배척해야 하는 생존경쟁이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상인들의 역할을 부각시킨 기록은 드물지만, 상인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고 군자금을 거둬줬던 역할을 보면 상인들이 민족정기를 세우는데 기여한 바가 컸다고 정리될 수 있다.

두계리 아랫장터에서 운영중인 이발소 입구


두계장터 위, 아래를 통틀어 옛 시장 분위기가 나는 업소가 하나 있다. 아랫 장터에 가면 현재도 운영중인 이발소가 있다. 입구부터 옛 이발소라는 분위기가 물씬 나지만, 60, 70년대 이런 이발소였다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업소다.

이발소 의자나 미용도구(바리깡 등)들도 옛 것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계룡시의 소상공인 사업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명예로운(?) 사업장이 아닐까 싶다(미확인).

이발소 내부

이발소 실내외를 살펴보면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나오는 70년대 풍경이 그려진다. 어른들이 어릴 적 다니던 이발소 기억이 소환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발소 문은 열려 있었지만 이발사는 자리를 비웠다. 이발사를 찾아 상고머리를 주문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용기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