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난 뒤 읽은 책을 소개하는 일이란 잘못하면 빰맞을 소개팅을 주선하는 일과 같다. 읽는 사람의 주관에 의한 판단이 이어질 수밖에 없어 마치 내 분석이 전부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옳지 못한 분석을 내놓게 된다면, 저자나 독자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문학작품이라는 예술성을 훼손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책 읽는 이유를 '독후감 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다녔다. 남이 써놓은 글을 책값만 지불하면 나의 간접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있고, 이 지식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면 멋진 옷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독후감도 창작행위다. 쓸 때마다 책의 성격과 여러 사연에 맞춰 글을 쓰지만, 줄거리를 정리하는 교과서적인 글은 쓰지 않는다. 줄거리를 나열한 독후감은 내가 이 책을 읽었노라는 지적 우월감의 표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창작의 범위에 그게 와닿지 않는다.
전개되는 글의 내용과 표현을 중심으로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여 퍼즐을 맞추는 일이 가장 흥미롭다. 창작물은 작가의 정서에서 나온다. 작가의 직, 간접 경험들이 밑줄기가 되어 생산된다.
글귀마다 작가의 속내가 숨어 있기도 하고 글에는 표현한 적 없지만, 작가의 어릴 적 정서나 성격도 쉽게 파악되곤 한다.
지난주 동네 책방 '화서재'에서 소설가 천운영의 '쓰고 달콤한 직업'이라는 산문집을 샀다. 책방에 같이 간 동료들이 내가 사는 책을 보았다. 책방 주인과 인사도 나눴다. 왠지 책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숙제가 밀린 것처럼 불안한 마음 감출 길 없다.
'쓰고 달콤한 직업'이라는 책은 소설가인 작가가 서울 연남동에 '돈키호테의 식탁'이라는 스페인 식당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맛있는 이야기들이다. 소설가가 갑자기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그리 큰 사건은 아니지만, 작가 의도와는 달리 해석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한 2년 간의 배부른(?) 취재행위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의 줄거리는 소개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읽을 만한 책이라고 멋지게 소개할 수 있을만큼 글빨이 서지 않는다. 행여 잘못 소개하여 "에잇, 흔한 책 중에 한권이겠지"라고 쳐버리는 독자가 있다면 독후감의 몫을 하지 못한다.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보는 글귀나 글쓰기 방식을 밑줄 그어가며 읽을 정도로 집중이 잘되는 글이다. 한편 한편 읽고 나면 몸이 가쁜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작가와 교감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책 속에 나온 '맛있는 이야기' 한편 내려놓는다. 침샘이 나오고 바로 시도하고 싶은 저자의 할머니 '요로코롬' 요리방식이다.
저자의 할머니는 꼬막을 맛있게 삶는다고 한다. 그 비법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냥 삶으면 되지 요로코롬" 말뿐이라서 나머지 기법은 어깨 넘어로 배워야 했다는 작가의 표현이다.
꼬막은 처음부터 물에 넣고 삶는 것이 아니고, 끓는 물에 꼬막을 넣었다가 물이 다시 끓어 오를 때까지만 삶으면 된다고 한다. 기법이랄 것도 없지만 사실 꼬막 맛을 결정한다. 너무 삶으면 살이 질기다. 덜 삶으면 비릿함이 더하다.
천운영 작가는 꼬막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할머니가 삶아 준 꼬막은 회와 숙회 사이에서, 야들야들함과 쫄깃한 사이에서, 날것과 익은 것의 고소함 사이에서, 최상의 맛을 유지한다. 그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삶은 즉시 솥째 끌어안고 까먹어야 한다. 식기 전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싱거워지기 전에, 두팔 걷어 붙이고, 팔꿈치까지 짠물 질질 흘리며, 까서 넣고 넣으면서 까고, 전투적으로 먹어주는 거다. 물론 양념장 얹어 먹는 맛도 좋긴 하지만, 그건 왠지 양념에 공을 나눠주는 것 같으니, 순정한 꼬막맛에 오롯한 찬미를!"(천운영, 쓰고 달콤한 직업, 마음산책, 106쪽)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서도 꼬막의 맛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태백산맥은 꼬막의 맛을 남정네가 여인과 정사를 나눌 때 느끼는 맛으로 비유했다. 얼굴 붉어질 정도의 섹스행위 묘사로 기억한다. 태백산맥에 나온 꼬막의 맛도 천운영 작가 할머니처럼 '요로코럼 삶아야' 가능했을 맛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작가 덕분에 꼬막을 맛있게 삶는 법과 문어 삶는 방법까지 다양한 요리 기법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작가가 운영하는 '돈키호테의 식탁' 손님이 되는 독서시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책을 읽으면서 엄사리 책방 주인과 작가의 이미지가 교차되면서 묘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책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데, 골목 책방을 개업한 일도 사건으로 보이지만,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지친 사람들이 책방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책방 주인의 용기를 높이 산다.
▲엄사면 엄사리에 위치한 작은 책방 '화서재'에 다양한 책들이 독자들 기다리고 있다.
▲책방 주인이 독자가 요구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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