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깡통


작업실에 작은 공구들을 꽂아놓은 깡통 두 개가 하루를 다 버렸다.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불깡통을 만들었다.

깡통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지식이 없다. 625 전쟁 때 미군에 의해 보급품이 통조림으로 들어왔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깡통이 보름날 아이들의 놀이감이 된 것은 625전쟁 이후라고 보면 된다. 대보름을 앞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불놀이를 즐기던 풍습에서 깡통은 당시 아이들에게 새로운 놀이기구였다.


대보름을 앞두고 일년 내내 책상 위 연필꽂이로 재활용하던 통조림깡통이 마지막으로 재활용되는 때가 정월 대보름이다.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 그곳에 불이 붙은 작은 장작을 넣어 돌린다. 지금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전쟁 이후 폭탄이 터지는 불바다를 경험한 어른들이 어렸을 적에는 위험한 놀이가 아니었다.

불깡통을 돌리다가 간혹 논두렁 짚누리를 태워 소가 봄날까지 먹어야 할 여물이 잿더미가 되어 혼나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불깡통 사용을 막지는 않았다.

어느 마을에나 욕심 많은 심술꾸러기가 한 두명 있다. 심술꾸러기는 딱지치기 할 때 자신만 크기나 무게가 다른 왕딱지를 가지고 나와 게임을 하는 편법왕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불공정한 게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정서가 어릴 적부터 싹이 튼 자다.

심술쟁이는 불깡통을 돌릴 때도 분유깡통이나 페인트깡통처럼 큰 깡통을 들고 나온다. 큰 불로 작은 고등어깡통을 돌리는 아이들을 위협하고 자신의 불깡통이 최고인 것처럼 으스댄다. 으스대다가 결국 큰 불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져 털이 다 타 봄날이 될 때까지 아멩이를 벗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아멩이=벙거지)

지난 연말부터 국가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정치인들이 과거 불깡통 돌이거나 딱지치기 할 때처럼 자신의 만족을 위한 불공정한 세상을 꿈꿔던 자들은 아니었는지...

불깡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