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나 톱으로 무언가 자를 때 쓰는 표현은 다양하다.
무엇을 자르느냐에 따라 썰다, 가르다, 쪼개다, 동강내다, 켜다, 자르다, 패다, 베다, 타다 등 여러 가지 동사가 쓰인다.

그중 관심이 가는 용어가 바로 “박을 타다”라는 말이다.
지난봄 고향집 앞 개울가에 던져 두었던 박씨가 싹을 틔워, 드디어 큼직한 박 하나가 열렸다. 오늘 거둬 들이다가 문득, 왜 하필 박을 자를 때만 ‘타다’라는 말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박 따위를 톱 같은 기구를 써서 밀었다 당겼다 하여 갈라지게 하다”라고 정의한다.
흥미로운 점은, 국악기를 연주할 때도 ‘거문고를 타다’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박은 말리면 단단해져 바가지나 악기의 울림통으로 쓰인다. 이 점이 음악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톱으로 박을 켤 때 나는 ‘슥슥’ 하는 리듬감 있는 소리가 장단을 타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타다’라는 한자어는 따로 없다. 대신 劈(벽), 剖(부), 分(분), 破(파) 같은 비슷한 한자를 빌려 쓸 수 있겠지만, ‘박을 타다’라는 표현 속 ‘타다’는 순수한 우리말에서 비롯된 생활언어다.

더 찾아보니 ‘타다’라는 동사는 뜻이 무려 아홉 가지나 된다.


① 불에 타다
② 말을 타다
③ 가루를 물에 타다
④ 곗돈을 타다
⑤ 박을 타다
⑥ 거문고를 타다
⑦ 때가 타다
⑧ 솜을 타다
⑨ 손을 타다

이렇듯 같은 ‘타다’라는 말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품는다는 사실은,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다의성과 생활 감각을 잘 보여준다.